파라오 무덤을 건든 사람들에게 벌어진 기이한 일

고대 이집트어로 ‘왕’이라고 불리며 ‘최고 통치자’라는 뜻을 가진 그 이름. ‘파라오’

그중 13대 파라오 ‘투탕카멘’이란 인물을 알고 계시나요? 기원전 1361년부터 9년 동안 재위 후 18살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소년 왕. 너무 어린 나이에 죽은 탓에 자손도 없어 이집트 왕조 시절 존재감이 없는 군주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히려 이렇게 존재감이 없었기에 유명한 군주의 무덤은 도굴꾼들에게 이미 다 털렸지만 투탕카멘의 무덤만은 온전히 잘 유지된 채 발견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그의 무덤이 발견되고 나서 한 가지 미스터리한 일이 발생되고 맙니다. 다름 아닌 당시 무덤을 발굴했던 팀이 하나둘씩 연달아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던 건데요.

먼저 투탕카멘의 무덤 발굴에 큰 역할을 맡았던 대표적 인물은 바로 투탕카멘의 무덤을 직접 발굴했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 그리고 하워드 카터에게 후원을 해준 영국 귀족 입니다.

당시 1914년부터 시작한 발굴 작업이 8년째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드디어 1992년 11월 6일. 투탕카멘 무덤의 입구로 추정되는 계단을 발굴하게 되며 수많은 인부와 조사단이 무덤으로 보이는 계단 입구로 들어가게 됩니다.

무덤에 들어가자마자 보였던 건 도굴이 되지 않은 아주 깨끗한 상태의 파라오 인장. 발견 당시 실제로 그들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방이 황금이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왕의 유물이다.”

그의 묘는 전실, 부속실, 현실, 보물창고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엄청난 양의 금으로 장식된 관, 미라의 케이스, 호화로운 침대, 황금 옥좌 등으로 꽉 차 있었기 때문이죠.

이렇게 5중으로 된 관을 차례차례 열어보니 드디어 미라를 담은 관이 나왔다고 하는데요.

온몸을 아마포로 칭칭 감은 미라의 얼굴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 가면이 씌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가면을 벗기고 겹겹이 둘러싼 아마포를 헤치니 쏟아져 나온 건 무려 143개나 되는 온갖 보석. 열여덟 살밖에 안됐던 파라오가 하늘로 가지고 가려 했던 황금 보화는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그러나 발견 당시 가장 미심쩍었던 건 바로 파라오 관에 적혀져 있던 ‘왕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는 죽음의 날개에 닿으리라’ 라는 문구. 이 문구를 그냥 넘겨선 안됐습니다. 왜냐하면 발굴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차례대로 의문사를 당했기 때문이죠.

그 첫 희생자는 바로 영국 귀족 카나본경. 발굴 후 4개월 뒤인 1923년 4월 5일. 카나본경은 투탕카멘의 얼굴에 나있는 상처 부위와 똑같은 부위에 모기를 물려 합병증을 앓다 그로부터 10일 뒤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1929년 11월, 하워드 카터의 조수였던 리처드 베셋이 원인 불명으로 갑자기 사망하는가 하면 파라오의 관을 촬영했던 카메라맨 프랭크 로리조차 원인 불명으로 사망했다는데요.

실제 투탕카멘의 무덤 발굴에 참여한 22명의 관계자들 중 단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건. 이 예사롭지 않은 사건을 두고 전 세계 사람들은 ‘파라오의 저주’라고 떠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투탕카멘’이란 존재는 전 세계적으로 더욱 유명해지게 되죠. 이 저주에 대해 고대 바이러스, 미발견 질병, 미지의 독극물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지만 지금까지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여기서 가장 의문인 건 발굴에 참여했던 현지 인부들은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최고 책임자였던 하워드 카터도 66세까지 살다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를 비롯한 3,500점에 달하는 유물들이 카이로 박물관에 소장된 이후 더 이상 저주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투탕카멘 무덤을 발견했던 학자 하워드는 이 저주는 수많은 학자들의 죽음과 상관없이 단순히 우연의 일치라는 증언을 하게 됩니다.

고대 이집트 시절부터 보관되어 있던 투탕카멘의 무덤이 제대로 환기되지 않은 탓에 공기 중에 떠도는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됐을 거라고 하는데요.

실제로 투탕카멘 미라를 분석한 한 연구팀에 따르면 투탕카멘이 치명적인 전염병 말라리아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투탕카멘을 둘러싼 죽음의 실체 역시 말라리아에 의한 감염으로 밝혀졌죠.

그렇다면 왜 이러한 사실을 두고 파라오의 저주라는 소문이 펴졌던 걸까요? 당시 투탕카멘 무덤 발굴 작업이 8년째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 카나본경은 졸지에 파산 위기까지 처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금이 부족해진 카나본경이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런던의 한 유명 언론사. 카나본경은 투탕카멘 발굴에 대한 독점권을 주는 대신 후원을 요청했다는데요.

그 이후 투탕카멘의 무덤 발굴로 엄청나게 조명을 받게 됐지만 이에 대한 보도권은 그 언론사가 독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언론사는 보도를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때마침 카나본경이 무덤 발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게 되고 이때를 놓치지 않고 파라오의 저주라는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한 다른 언론사들. 이로 인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투탕카멘의 저주로 알게 됐다고 합니다.

또한 발굴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는 소문이 있지만 실제로 무덤 발굴에 직, 간접적으로 동원된 인부의 인원은 약 1500명. 하지만 10년 이내에 사망한 인원은 21명밖에 되지 않았으며 사망 원인은 병사, 사고사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왕의 이름을 알리는 자에게 복이 있으라” 이 문구는 실제 투탕카멘의 관에 적혀있는 문구입니다. 투탕카멘의 무덤을 직접 만졌던 사람들. 그들은 곧 축복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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